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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imes 2011년 12월 26일 보도자료.
작성일 2011-12-30

LA Times  2011년 12월 26일 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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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Times  2011년 12월 26일 보도자료 및 번역>

Fighting Monks' new master shares martial arts style
with the world

 

Source : LA Times
By John M. Glionna, Los Angeles Times
December 26, 2011

 

 

Reporting from Busan, South Korea— Buddhist monk Ando remembers the toil of all those years, trying to satisfy the training demands of an aging martial arts master who could never be pleased.
(안도 스님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었던 고령의 스승님 내리는 훈련을 소화해내기 위해 보냈던 그 모든 노력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Silent and impassive, monk Yang-ik perched in the lotus position on a platform above his young proteges, who leaped from mats, kicking two impossibly high bags one after the other, the best adding aerial somersaults before landing gracefully, like big cats.
(조용하고 무표정한 모습의 양익 스님은 단상에 결과부좌 자세로 앉아 제자들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제자들은 매트에서 도약해 아주 높은 곳에 달려 있는 자루를 하나하나씩 발로 차고는 착지 하기 전 마치 큰 고양이의 몸놀림처럼 우아한 공중제비를 보였다.)

When they finished, panting and sweating, the master dismissed them. "You have done nothing today — I have done all the work," he would say. "You try to impress me, but when I am gone you are loose-minded. This discipline is not mere athleticism, but a way of life."
(숨을 헐떡이며 땀에 젖은 채 제자들이 끝을 마치자, 양익스님은 그들을 물러가게 했다. 스님은 "오늘 너희들은 뭘 한것이냐. 난 할일은 다했다"라고 말을 하곤 했다. "너희들은 나를 만족시키려고는 하지만, 내가 없을땐 정신 상태가 해이해진다. 이 수련은 하나의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삶의 길인 것이다.")

Fighting Monks( Matt Douma / For The Times )
Buddhist monk Ando demonstrates Sunmudo martial arts techniques. The monks of Beomeosa Temple in South Korea are famed for defeating Japanese invaders during the late 1500s and agai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in the early 20th century. 

At age 47, head shaved, his gray robe swirling around his precise movements, Ando recently succeeded the old master to direct the training regimen of a unique Buddhist order South Koreans call the Fighting Monks for their history in battling Japanese invasions. In the process, Ando is bringing its centuries-old traditions into the modern world.
(삭발을 한 **세의 나이에 정확한 동작을 따라 휘감기는 회색 가사를 입은 안도 스님은, 최근에 자신의 사부님 뒤를 이어 일본 침략에 맞서 싸운 오랜 역사때문에 한국에서 'Fighting Monks'라 불리는 독특한 불교 종단의 훈련요법을 지도하게 되었다. 안도 스님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이 전통들을 현대의 세상에 전수하고 있다.)

Stern and reclusive, the old master Yang-ik rarely allowed outsiders to train among the monks and resisted popularizing a martial arts technique known as Sunmudo that has historically been steeped in secrecy.
(엄하면서도 속세를 떠난 고령의 사범이었던 양익 스님이 스님들과의 훈련을 외부인에게 허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으며, 역사적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선무도라고 알려진 무술 기술의 대중화에 반대했다.)

Once, on a rare occasion when he allowed visitors to train there, he sternly greeted their arrival on a rainy day. "Rain is falling. Buddha is crying," he told them. "And for that you must be punished."
(한번은, 양익 스님이 이례적으로 절을 찾은 이들에게 훈련을 허락한 경우가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 도착한 그들을 엄히 맞았는데, 스님은 "비가 오고 있다. 부처님이 눈물을 흘리고 계신다. 이런 이유로 너희들에게 벌을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다.)

Yang-ik taught his students about sacrifice and selflessness, but Ando reasoned that did not preclude the order's fighting history and techniques from being introduced to the outside world.
(양익 스님은 제자들에게 희생과 무욕을 가르쳤다. 하지만 안도 스님은, 이런 방식으로는 종단의 무술 역사와 기술을 외부 세계에 알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Since he took over, he has expanded a Sunmudo gym in Busan, where 35 laymen now train with eight monks. Ando has also visited Los Angeles, where he wants to open a martial arts training center.
(안도 스님이 양익 스님 자리를 이어받은 후, 안도 스님은 부산에 있는 선무도 수련원을 확장했는데, 현재 35명의 평신도들이 8명의 스님들과 수련을 하고 있다. 또한 안도 스님은 LA를 방문했는데 그곳에 무술 수련 센터를 열고 싶어한다.)

"I practice this art for the honor of my master and for the country people who lost their lives fighting alongside the monks centuries ago," he said. "I want to spread it around the world."
(안도 스님은 "저는 제 사부님과 수백년전 스님들을 포함한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를 위해 이 무술을 닦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Buddhist monk Ando strolls along a mountain path near the temple.( Matt Douma / For The Times )
Buddhist monk Ando strolls along a mountain path near the ancient temple of Beomeosa. 

For more than a quarter of a century, Ando has studied at the ancient Beomeosa Temple, which was first built 1,400 years ago in a bamboo grove high in the mountains that now overlook the sprawling southeastern port city of Busan.
(25년 넘는 세월 동안 안도 스님은 오랜 역사를 가진 범어사에서 수행했다. 이 사찰은 현재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부산이 내려다 보이는 산의 대나무 숲에 1,400년 전 처음 세워졌다.)

On a clear day, Ando can make out Japan's Tsushima Island just 30 miles to the west, a proximity that has influenced the city's history and bestowed a special role to Buddhist holy men usually known for their profound passivity.
(화창한 날엔, 안도 스님은 서쪽으로 겨우 30마일 떨어져 있는 일본의 쓰시마 섬을 볼 수 있다. 이런 지리적 근접성 때문에, 부산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고 흔히 세속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스님들이 특별한 역할을 안게 되었다.)

In the 1500s, monks here used swords, knives, spears and throwing stars to help repel a Japanese invasion that ended with the burning of their temple by retreating troops. Centuries later, a rebuilt Beomeosa became headquarters for the monks' underground resistance to Japanese occupation in the 1930s and '40s.
(1500년대, 스님들은 일본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검, 칼, 창 그리고 표창을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퇴각하는 일본군이 절들을 불태워버렸다. 수세기가 지나 다시 세워진 범어사는 1930년대와 1940년대 일본의 점령에 대한 스님들의 지하 저항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But their martial artistry languished for generations until the 1970s, when Yang-ik arrived to revive Sunmudo by systemizing its techniques, this time without weapons.
(하지만 이들의 무술은 1970년대까지 세대를 거치면서 쇠퇴했다. 1970년대 양익 스님은 무기는 사용하지 않고 선무도 기술을 체계화시키면서 부활시켰다.)
There is little sparring, but defensive moves once used in combat are combined in a sort of athletic meditation, like that of China's Shaolin monks. For years, students conditioned themselves by striking tree trunks, as well as a millstone the size of a car tire that hung from a tree, until it swayed to their rhythm.
(반대는 거의 없었지만, 한때 전투에 사용되었던 방어적 동작들은 중국 소림승려들이 하던 운동을 통한 명상 방법과 유사한 종류와 접목되었다. 오랫 시간 동안 수련생들은 나무 몸통과 나무에 매달린 차 바퀴 크기의 맷돌이 자신들의 리듬에 맞춰 흔들릴때까지 타격을 함으로서 스스로를 훈련시켰다.)
Always watching, Yang-ik had a stern philosophy that had nothing to do with fighting style: Vanity and ambition prevent martial arts enlightenment.
(항상 이를 지켜보던 양익 스님이 가지고 있던 확고한 철학은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만심과 야망은 무술을 깨우치는 걸 방해한다는 것이다.) 

Ando arrived at the place known as the Temple of the Nirvana Fish in 1984, drawn by the reputation of its master. Just 20, he came for the martial arts, but later took his oath as a monk.
(1984년 Nirvana Fish 절의 사범에 대한 명성에 이끌려 그곳을 갔다. 약관 20세의 나이에 안도 스님은 무술때문에 왔다가 나중에 승려가 되기로 맹세했다.)
Master Yang-ik became the focus of his world. Often imperious, sometimes grandfatherly, the elder monk demanded that his students not only pray and practice martial arts, but also work.
(스승인 양익스님은 그 세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보통은 고압적이지만 자애로운 모습도 보였던 고령의 안도 스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불과 무술 연마뿐만 아니라 울력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They rose at 4 a.m., running to the top of the nearby mountain before breakfast. Between the twice-daily practices, they carved stone to produce religious icons and likenesses of Buddha.
(이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공양전까지 인근 산 정상까지 달렸다. 그리고 하루 두번의 수련을 받는 중간에, 돌을 깎아 불상과 부처 화상을 만들었다.)
But while the master reveled in the past, his top student began to concentrate on the future. For years, Ando went to the graying Yang-ik and asked to be allowed to expand Sunmudo outside the temple walls. Each time he was rebuffed.
(하지만 사범이 과거에 집착해 있는 동안, 안도 스님의 최고 수제자는 미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안도 스님은 백발의 양익 스님을 찾아가 절을 벗어난 선무도 전파의 허락을 구했다. 그럴때마다 안도 스님의 요구는 거절당했다.)

Not long before the old monk's death, Ando went too far: He took a dozen young students to perform at a nearby festival without the master's permission. Yang-ik was furious. He pardoned the students but not Ando, whom he beat with a paddle.

(양익 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 안도 스님은 도를 넘는 행동을 했다. 안도 스님은 사범의 허락없이 십여명의 젊은 수련생을 이끌고 인근 축제 공연에 참여했다. 양익 스님은 진도했다. 양익 스님은 수련생들에 대해서는 눈 감아주었지만 안도 스님에겐 회초리로 매질을 했다.)

Teaching theory( Matt Douma / For The Times )
Ando explains the theory behind a martial arts technique to students. Behind him is a painting of his predecessor and an elevated table where the master sat. No one is allowed to sit there, not even Ando.
"After all these years, you have learned nothing," Yang-ik said. "We are not showboaters. You have insulted what we do here."
(양익 스님은 "결국엔 넌 아무것도 깨치지 못했구나. 우리는 순회공연단이 아니다. 넌 우리가 하는 일에 먹칠을 한게야."라고 말했다.)

Here was a grown man being pummeled before the others by a man nearly twice his age. But Ando endured the punishment in silence, so strong was his devotion.
(자신보다 나이가 두곱절이나 많은 남자에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매질을 당하는 성인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안도 스님은 묵묵히 벌을 견뎌냈다. 결국 그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
*
In 2007. Ando was meditating in another part of the temple when he learned of the master's death. He rushed to his side and found that Yang-ik had died in the lotus position, his head suddenly falling to his chest.
(2007년 안도 스님은 스승의 죽음을 접할 당시 절의 다른 곳에서 묵상중이었다. 스승에게 달려간 안도 스님은, 양익 스님이 결과부좌 자세로 입적하신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양익 스님의 머리는 갑자기 가슴쪽으로 숙여졌다.) 

The younger monk ran to his room.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he cried. He suddenly began to rue all the questions he had never asked Yang-ik — not only about martial arts but about life.
(이 젊은 스님은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안도 스님은 무술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모든 질문을 양익 스님에게 여쭙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I felt I had lost everything," he recalled, sitting erect on the floor of a room that decades ago housed anti-Japanese strategy sessions. "The most revered figure in our lives was gone. Who would lead us?"
(수십년 전 일본에 맞설 전략 회의 장소였던 방 마루에 꼿꼿하게 않은 그는 "전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존경받는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앞으로 저희를 이끌 분은 누가 될지요?"라고 말했다.

For three years, Sunmudo training at Beomeosa stopped. Ando practiced on his own, but never with others. Could he ever assume the role that Yang-ik had left vacant? He felt unworthy.
(오랫동안 범어사에서의 선무도 수련은 중단되었다. 안도 스님은 홀로 수련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절대 같이 하지 않았다. 양익 스님이 공석으로 남겨둔 역할을 그가 맡을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But on the third anniversary of Yang-ik's death, temple elders named Ando to succeed Yang-ik. Ando soon brought his own style to the task, changing Beomeosa from a closed society to one that encourages outsiders to study there.
(하지만 양익 스님의 열반 3주기 추도식에서 절 원로 스님들은 안도 스님을 양익 스님의 후계자로 지명했다. 곧이어 안도 스님은, 폐쇄적이었던 범어사를 외부인이 공부할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키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접목시켰다.)

On a recent day, Ando trained with two students. His slow movements suggested muted power and his leaps lingered in the air, his robe flying, his body seemingly held by invisible cables.

(최근 어느날, 안도 스님은 두 명의 수련생을 훈련시켰다. 그의 느린 동작들은 무인의 힘을 보여줬고, 가사를 휘날리며 마치 보이지 않는 줄에 의해 몸이 지탱되고 있는 듯한 공중 도약을 보였다.)

 

Buddhist monk Ando( Matt Douma / For The Times )

Ando inside the temple grounds. The site was long off limits to outsiders, but Ando now welcomes them as students.
"This is the martial arts form that once saved a nation," said Gene Healy, 40, a professor of Oriental medicine from Tampa, Fla., who has studied at Beomeosa, where large paintings of monks in martial arts poses adorn temple buildings. "Ando has continued the tradition. He is one of the gentlest people you will ever meet, until he gets to the gym."
(범어사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플로리다주 서부 탬파 출신인 40세의 동양의학 교수 Gene Healy씨는 "이것이 한때 국가를 구한 무술입니다. 안도 스님은 그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그 분이 수련관으로 가기 전까진, 당신이 앞으로 만나는 가장 인자한 사람중 한 분일 겁니다." 범어사의 벽은 무술자세를 취하고 있는 스님들의 대형 그림들로 꾸며져 있다.)

Above the platform where Yang-ik once sat hangs a painting of the old master. No one is allowed to sit there, not even Ando.
(양익 스님이 한때 앉았던 단상 위엔 스승의 그림이 걸려있다. 안도 스님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그곳에 앉아서는 안된다.)

"I still believe he's here, still teaching," Ando said. "When I'm with students, I hear the master's voice in my head."
(안도 스님은 "아직도 전 그 분이 이곳에 계신다고 믿습니다. 수련생들과 같이 있을땐, 제 머리속엔 스승님의 목소리가 들립니다."라고 말한다.)

Yet he knows that Yang-ik might be displeased with his decision to publicize the spirit of the fighting monks, and with the discipline's newfound popularity
(하지만 안도 스님은, 무술을 하는 스님들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자신의 결정과 이 무술 수련에 쏟아지는 새로운 인기를 양익 스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Absolutely, he would not be happy," Ando said with a smile. "He'd think my actions were too outlandish. I'd probably get the paddle."
(웃음을 띄며 안도 스님은 "절대 그 분은 기뻐하시지 않을 겁니다. 그 분은 제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 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스승님이 저에게 회초리를 내렸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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